엔와이댄스(NY Dance), “이것이 진짜 방송댄스다”

엔와이댄스(NY Dance), “이것이 진짜 방송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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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댄스에도 저작권이 생긴다. 반가운 일이다. 싸이의 말춤, 시건방춤, 크레용팝의 직렬오기통춤 등이 전세계적인 댄스가 되면서 댄스는 한류를 이끌어가는 고부가가치의 몸짓이 되었다.

  엔와이댄스 최종환 대표의 감회는 남다르다. 댄스에 입문한지 20여년. 꿈으로만 그려오던 국내댄스의 세계 평정이 현실화되고 있어서다. 국내 최정상의 댄스 전문 아카데미인 엔와이댄스를 거쳐간 스타는 셀 수 없이 많다.

  가수 원더걸스, 2PM, 2AM, 애프터스쿨 등의 댄스트레이너가 엔와이댄스에서 탄생됐으며 이효리, 백지영, 휘성, 드렁큰 타이거, 지누션 등의 무대에 엔와이댄스의 댄서들이 있었다. 한국 방송댄스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신화, 바로 그 엔와이댄스를 이코노미뷰가 인터뷰했다.

 

◆스트릿씬으로부터 방송댄스의 메카가 되기까지

그야말로 댄싱키즈(Dancing Kids)였다. 10살부터 춤을 췄던 아이, 댄스 가수들이 TV를 화려하게 수놓던 80년대에 마이클 잭슨이 추던 댄스가 너무 좋았던 최 대표는 형들을 졸라 웨이브와 브레이크 댄스를 배웠다.

댄스를 향한 몸과 감각이 발달 중이던 중학 시절에는 서태지와 듀스가 출격했다. 아찔했다. 파격이었다. 더 열심히 춤을 췄다. 좋아서 춤을 추니 기량이 하늘을 찔렀다. 남들이 대학이라는 같은 고민을 할 때 프로페셔널 댄서의 길을 택했다.

그는 억세게 운이 좋은 댄서였던 것 같다. 그 당시 제일 잘 나가던 엄정화, 벅을 안무하던 무용단 ‘꾼’ 연습실에 들어가 아침부터 밤까지 춤만 췄다. 본격적인 스트릿 댄서의 길을 걷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마이클 잭슨의 안무가 엘리트포스, 일렉트릭부갈루스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댄서들에게 제대로 전수받았다.

우리나라 힙합과 비보이의 1세대인 ‘엔와이 크루’도 탄생시켰다. 최 대표는 말한다. “그 당시(1996년)만 해도 스트릿 댄스(Street Dance)에 대한 선입견이 강했어요. 방송댄스와 전혀 다르게 여겼으니까요. 거리 예술문화로 돈을 벌 수 있는 코드는 없었다고 봐야죠.” 대학로나 명동에서 거리 공연을 하다 쫓겨난 일도 여러 차례. 그러나 그렇게 생겨난 인지도가 ‘힙합댄스스쿨’의 인기강사로 발탁된 계기가 됐다.

“적은 나이였는데도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이 댄서들에게 중요한 터전이 될 수 있겠다고 직감했죠. 그 때는 댄서들의 진로란 게 방송 백업댄서에 국한돼 있었거든요.” 같이 하던 팀들이 의기투합하고 최 대표의 가능성을 알아본 지인의 도움으로 ‘엔와이 크루 댄스 스쿨’을 열게 됐다. 그러다 2001년에는 독립을 하게 되니, 이것이 <엔와이댄스>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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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댄스의 성장과 발전 일구어 온 실질적 터전

댄스를 연습하려다보니 공간이 필요했고 그래서 시작한 학원이었다. 초기에는 시행착오도 많았다. 전문성과 대중성을 함께 가져가는 전환점이 필요했다.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접하게 된 최 대표는 “주어진 시스템을 잘 활용하면서 시장상황에 맞게 우리 환경을 적용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마케팅이었습니다. 선배나 전문가들에게 조언과 자문도 구했고요.”라고 들려준다.

초창기 ‘엔와이 크루’ 멤버들과 함께 댄스문화의 텃밭을 일구어 온 엔와이댄스는 마케팅적인 부문을 고민하면서 더 큰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춤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더 많이 만났고 이들과 학원의 경영 파트와 아티스트 파트로 분류해 댄스 콘텐츠를 강화했다. 커리큘럼은 취미반, 스트릿댄스반, 전문반/입시반으로 특화했다.

이 중에도 전문 분야는 역시 스트릿 댄스다. 비보잉, 힙합, 팝핀의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수강생들은 자연스럽게 취미반에서 전문반으로 넘어가며 백업댄서부터 강사까지 갈 수 있는 진로를 확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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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형 인맥으로 최상의 경쟁력 갖춘 엔와이댄스

엔와이댄스는 일반 댄스학원과 달리 방송, 기획사, 학교 등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회원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전문적인 필드 인맥을 갖추고 있다.

춤으로 실용무용과 예고, 예대를 진학하고자 하는 회원들도 줄을 잇는다. 그러므로 엔와이댄스는 매일 매일이 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도전이다. 경영파트와 아티스트, 회원들 모두가 작은 것부터 공유할 수 있으며, 기획사와 연계된 가수 오디션반, 엔와이댄스에서 직접 디자인한 전용 티셔츠 등으로 결속력을 다진다.

지난해 12월에는 악스홀에서 천여 명의 회원과 ‘퍼포먼스 오브 더 이어(Performance of the year)’라는 학원수업의 연장을 전문적인 쇼케이스로 만들어냈다. 올해 세종문화회관에서 학원강사와 학생들이 참여해 공연한 뮤지컬 ‘문라이트(Moonlight)’, 엔와이댄스에서 기획해 5회째 개최되는 청소년 댄스배틀 ‘슈퍼틴에이저’ 또한 뜨거운 반향을 불러왔다.

오는 12월에도 엔와이댄스는 관객 2천 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퍼포먼스 오브 더 이어 2013’을 계획하고 있다. 엔와이댄스의 설립자이자 기초자 역할을 해 온 최 대표는 “회원들과 강사들 사이의 멘토 역할에 박차를 가해 더욱 글로벌화한 엔와이댄스로 도약할 것”이라며 “미래를 여는 중요코드인 댄스를 아트컬쳐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단계를 실현해 갈 예정”이라 밝혔다.

실무자역인 최종윤 경영이사는 “그동안 제의가 많이 들어왔지만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프랜차이즈 사업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그동안의 노하우로 서울·경기권 이외의 지방에서도 더 좋은 댄스 컨텐츠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활로를 모색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제 한국 방송댄스는 에너지다. 한류코드를 형성하는 무한의 힘이다. 방송댄스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에 놓게 한 댄싱 아카데미, 엔와이 댄스. 바로 그 곳에서 빌보드를 향한 K-POP의 도약이 시작되고 있었다.

[2013.10.16, 아시아뉴스통신]

원문링크 : 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558612&thread=03r02